AI 시대, 무가치함과 싸우는 직장인의 고민
우리는 모두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AI가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그것을 어린아이의 재롱처럼 바라보았습니다.
“우와, 신기하다.”
딱 그 정도였습니다.
질문을 하면 그럴듯한 답을 하고, 그림을 그려 달라 하면 제법 신기한 결과물을 내놓는 기술. 물론 놀랍기는 했지만, 그것이 저의 일과 삶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것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AI는 너무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처음에는 장난감처럼 느껴졌던 존재가 이제는 저의 지도교수님을 넘어, 마치 이 분야 최고의 석학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알려주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를 구조화하고, 방향을 제안하고, 코드를 작성하고, 오류를 추적하고, 때로는 제가 미처 보지 못한 관점까지 제시했습니다.
너무나 재밌어졌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이 커졌습니다.
그 변화는 제 직무에서도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한 반기의 KPI로 여겨졌을 분석 파이프라인 구축, 분석 리포트 기획, 결과 생성 자동화의 과정을 저는 AI의 도움으로 이번 6월, 단 3주 만에 모두 이루어 냈습니다. 심지어 기존에 제가 수행했던 프로젝트보다 훨씬 더 복잡한 작업들이었습니다. 단순히 시간이 줄어든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일의 속도와 범위, 그리고 가능성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그 순간 저는 AI가 정말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는 도구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생성보다 판단이 병목이 되는 시대
오늘 CJ 전 그룹의 희망자를 대상으로 한 AI 직무 활용 세미나에 참석하였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AI가 발전하면서 우리의 생산 속도가 빨라졌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AI는 빠릅니다. 무서울 정도로 빠릅니다. 그러나 세미나에서 들었던 핵심은 그다음이었습니다.
AI의 생성 속도는 빨라졌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인간의 판단 속도로 인해 병목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AI가 너무 빠르게 결과물을 쏟아내기 때문에, 이제 병목은 생성이 아니라 판단에서 발생합니다. AI가 만든 코드, 문서, 기획안, 분석 결과를 사람이 제대로 읽고 판단하지 못하면, 무분별한 AI 활용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을 더 느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제 경험을 돌아보니 정말 맞는 말이었습니다.
AI는 중요한 분기점마다 꼭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 방향으로 갈까요?”
“이 기준으로 처리할까요?”
“이 오류를 이렇게 해결해도 될까요?”
“이 구조가 맞습니까?”
그 순간 제가 생각 없이 “해줘!!!” 라는 생각으로 1번을 ‘딸깍’ 했다면, AI는 계속해서 같은 문제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오류를 해결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같은 자리를 뺑뺑 돌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AI가 멍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문제는 AI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방향을 정하지 않았고, 기준을 세우지 않았고, 무엇이 중요한지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AI는 빠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만드는지 여전히 인간이 결정해야 합니다.
그럴싸함의 평균
오늘 세미나에서 가장 크게 와닿았던 부분은 바로 ‘다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AI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다름’, 즉 ‘나다움’ 구현할 것인가.
AI는 그 시대를 뒤흔들었던 비틀즈나 마이클 잭슨처럼 완전히 새로운 감각을 창조하는 존재라기보다는, 결국 수많은 데이터가 만들어 낸 ‘그럴싸함’의 평균에 가깝습니다. 물론 그 평균은 매우 정교하고, 때로는 인간보다 훨씬 유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언제나 위험이 있습니다.
AI가 만든 코드는 그럴싸합니다.
AI가 쓴 문장도 그럴싸합니다.
AI가 제안한 계획도 그럴싸합니다.
AI가 정리한 의견도 그럴싸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새 그 그럴싸함 앞에서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정말 좋은 것인지, 무엇이 내 생각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새롭고 낯선 것인지 판단하지 못한 채, 그럴듯한 결과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AI 시대의 가장 큰 위험은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판단하기를 멈추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무가치함과 싸우는 시대
그래서 오늘은 유독 고민이 많은 밤입니다.
AI는 저의 역량을 확장시켜 주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저의 부족함을 너무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몇 년 동안 배우고 익혀 온 것들을 AI는 몇 초 만에 흉내 냅니다, 아니 흉내가 아니라 저를 훨씬 웃돌아서 심지어 우러러볼 수도 없습니다. 제가 어렵게 쌓아 올린 분석 역량, 글쓰기 능력, 문제 해결 방식조차 AI는 너무 쉽게 따라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럴 때 마음 한쪽에서는 이런 질문이 올라옵니다.
저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앞으로 몇 년을 버틸 수 있을까요.
제가 가진 역량은 여전히 가치가 있을까요.
우리는 모두 AI로 인해 우리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직무에 AI를 도입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AI가 저의 모든 역량을 뛰어넘는 것만 같고, 지금까지 제가 쌓아 온 시간이 순식간에 무의미해지는 것 같은 불안을 느낍니다. 더 빠르게 배워야 할 것 같고, 더 많이 활용해야 할 것 같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계속 뛰어야 할 것만 같습니다.
물론 맞습니다.
이 두려움이 단순한 과장만은 아닐 것입니다.
10년 뒤? 아니, 5년 뒤? 아니, 어쩌면 바로 내년만 해도 어떤 AI 기술이 등장하고, 또 얼마나 발전해 있을지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AI의 발전 속도는 빠릅니다.
많은 AI 기반 회사들은 말합니다.
이제는 판단마저 AI Agent를 이용해 구현하는 기술을 만들겠다고.
AI들끼리 의논하고, 판단하고, 개발하는 기술을 홍보합니다.
그 말을 들을수록 두려움은 더 커집니다.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의 시대로 넘어갈 때, 그렇게 유망했던 코닥이 몰락했던 것처럼.
그리고 이제는 미러리스 카메라의 시대가 오면서 DSLR마저 밀려나고 있는 것처럼.
AI의 발전 앞에서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직무와 역량도, 언젠가 그렇게 빠르게 낡은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
그렇다면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제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과연 어디일까요.
오랜만에 사색에 잠겼고, 깊은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결국 옳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옳은 일이란, 우리 동족인 “homo sapiens” species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을 말입니다. (웃음 포인트입니다. 웃어주세요)
AI가 우리 인간을 도와 누구나 쉽게 유전체를 분석하고, 자신이 세운 가설을 증명해 가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그 일을 묵묵히 지켜 온 우리 BI들의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BI들이 수많은 샘플을 다루며 몸으로 배웠던 경험들,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던 분석 과정들, 데이터 앞에서 수없이 고민하며 얻었던 판단 기준들.
그런 것들을 문서화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AI를 훈련시키는 일.
더 나아가 AI는 느끼지 못하는 인간의 실제 니즈를 먼저 파악하고, 그 니즈에 맞게 AI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계하는 일.
어쩌면 지금 제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의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나 쉽게 유전체 데이터, 특히 그중에서도 Metagenome data를 분석할 수 있는 분석 플랫폼을 개발해야겠다고.
내가 꿈꾸는 분석 플랫폼
압니다.
요즘은 누구나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실무자들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Visualization 기능이나 몇 가지 파라미터만 조율할 수 있어도 우리는 쉽게 그것을 분석 플랫폼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다시 꿈을 꿉니다.
제가 생각하는 분석 플랫폼이란 단순히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데이터가 생산된 이후부터, 연구자가 세운 모든 가설과 그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Reference,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 그리고 어떤 Figure를 통해 Journal에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것인지까지 함께 고민해 주는 도구입니다.
지금은 아무리 좋은 가설을 설계하고, 실험하고, 데이터를 생산했다 하더라도 그 데이터를 다룰 Bioinformatics 기술이 없다면 분석의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결국 그 분석을 위해 다른 이들과 협업해야 하고, 때로는 저와 같은 상업적 BI들에게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하지만 이제는 AI를 이용해 그러한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누구나 관심만 있다면, 그리고 자신이 가진 과학적 지식을 후대에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AI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는 시대.
그로 인해 인류의 건강과 발전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연구자를 위한 분석 플랫폼.
저는 그런 플랫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AI 시대의 인간
AI 시대에 인간의 가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더 엄격하게 검증될 것입니다.
그럴싸한 결과물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점점 더 위험해질 것입니다. 반대로 깊이 이해하고, 기준을 세우고, 맥락을 읽고,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오히려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결국 AI 시대에 살아남는 사람은 AI를 가장 많이 쓰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AI가 만들어 낸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두려움이 저를 위축시키는 감정으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이 두려움이 저에게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으면 합니다.
저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저는 무엇을 지켜야 할까요.
저는 어떤 다름을 만들어 가야 할까요.
AI가 점점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시대에,
저는 오히려 더 인간다운 질문을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질문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고민일지도 모릅니다.
2026.06.27 by Masa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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